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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글을 쓰기 전 고백을 하나 하려고 한다.
이 렛츠리뷰에 당첨된 이후 역대 렛츠리뷰의 당첨자들이 썼던 리뷰들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검색해서 견식 했던 적이 있었다. 꼭 따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다이아몬드 세공품을 다루는 전시회에 목각인형을 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리뷰들의 미려함과 행간에서 느껴지는 내공에 기겁을 했고 이는 본 리뷰를 작성함에 있어 적잖은 압박으로 남았다. 타 이글루어들의 리뷰들을 떠올리며 거의 완성된 글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수십......은 아니고 거의 10번 가량 반복한 결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냥 [이등의 리뷰]를 쓰자. 어설프게 다른 사람을 흉내 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될 것이며, 괜히 참새가 봉황을 따라가려다 다리 사이에서 피가 날 수도 있으니 나만의 감각으로 내가 느낀 것을 쓰자고 생각하고 다시금 타자에 손을 올렸다. 아래는 그리고 작성한 이등의 리뷰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의 리뷰들과는 좀 많이 다를 수도 있으며 꽤 파격적이고 격식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본 사람은 이등이고 리뷰를 쓰는 사람도 이등이기에 이등의 리뷰를 올리려고 한다. ************************************************************** 흔히들 무협지들을 구무협과 신무협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하지만 구무협과 신무협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무협은 진부한 서사와 비슷비슷한 사건들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라고들 말한다. 우스갯소리로 인물명, 무공명, 단체명만 바꾸면 새로운 작품이 되며 가끔 단체명은 바꿀 필요도 없는 것이 구무협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암왕이라는 작품은 어떤가? 원한생성 -> 과거의 안배에 의한 기연 -> 성장 -> 복수 간단한 이 플롯만 보자면 한 편의 훌륭한(?) 구무협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신무협과 구무협의 차이는 서사의 참신함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암왕은 엄연한 신무협이라고. 상기했듯이 암왕의 내용을 요약하면 진부하다 느껴질 수도 있으나 암왕은 확실히 다르다. 구무협이 적의 잔악함, 주인공의 기연과 성장, 복수에 초점을 맞췄다면 암왕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세월에 맞춰 변해가는 모습이다. 암왕은 정확히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전반부는 시련의 장으로 이름 짓고 싶고 나머지 후반부는 복수의 장, 혹은 결말의 장이라 부르고 싶다. 위정자들의 탐욕, 소위 명가, 명문들의 아집과 야망에 주인공 명강량이 몸담은 명교는 배교 또는 마교라 불리며 무림의 공적으로 지명되어 교도들이 중원 곳곳에서 척살당하고 그 시신이 저자에 걸리는 치욕마저 겪는다. 그리고 핍박과 추적을 피해가며 중원 곳곳의 명두들을 찾아 다니는 명강량. 이는 설봉의 수라마군, 사신, 남해삼십육검에서 보여진 [강하고 수가 많은 적들에게 고전하며 쫓기는 주인공] 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글의 초점은 명강량의 무위나 기지도, 배교의 신묘한 술법도, 소위 명문대파의 양면성도, 강호의 암산귀계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배교의 사람, 구파일방의 사람, 사파의 사람, 유향경천문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들간의 갈등, 고뇌, 이해타산을 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로 넘어가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명강량의 복수로 강호가 피에 물들기 시작하지만 이 글은 그 피를 피비린내가 나지 않게 담담히 묘사할 뿐이다. 여타 무협의 복수신에서 볼 수 있는 복수의 통쾌함도, 복수 후의 허무함도, 주인공의 살인과 복수의 사이에서의 고뇌도 그리지 않는다.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는 메마르고 건조하게 살짝 훑고 지나갈 뿐이다. 인고의 세월이 지난 후의 복수임에도 그것은 단순히 글의 배경일 뿐이며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변화와 그 인물들이 만들어놓은 변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이 글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인간군상을 이야기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이 느낌은 본문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더욱 강렬히 다가왔다. 왜 그들은 각자의 생각,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걷지 않고 각자의 길을 막고 침범하는 데 더 바쁠까. 암왕에서는 현대인이 보기에도 친근한 것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정치인들의 탐욕, 종교의 핍박, 종교를 이유로 흐르는 피... 무협이라는 낯선 세계의 인물들이 벌이는 일들에서 아주 익숙한 요소들이 보이니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이 글의 문체는 딱딱하고 건조하며 그 내용은 어둡고 묵직하며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것은 작중의 내용들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묘하게 낯익게 들리기에 더욱 더 심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 무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감사하게도 고전중의 명작 한 편이 재간되었다. 암왕은 인터넷의 무협관련 모 갤러리(라고만 말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 듯)에서도 한국 무협사에 꼽히는 우수한 작품으로 논해지는 작품이다. 재간되어 미처 작품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판타지무협] [퓨전무협]이란 이름 하에 가벼움만을 극도로 추구하는 지금의 무협판도에서 너무도 갑작스레 무겁고 메마른 작품이 나온 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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